담임목사 칼럼

  • 홈 >
  • 알림&나눔 >
  • 담임목사 칼럼
담임목사 칼럼
설교 :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오금표 2015-02-15
  • 추천 0
  • 댓글 0
  • 조회 474

http://bansuk2010.onmam.com/bbs/bbsView/114/602490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마가복음 2: 13 - 17

 

 

이제 우리는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새봄을 맞이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어둡고 캄캄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 시대는 너무도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해떨어지고 캄캄하면 자야 되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 했는데 지금은 밤낮이 없습니다. 도서관에서 좋은 자리는 조용한 자리인줄 아는데 이제는 살짝 핸드폰을 할 수 있는 자리랍니다.

홈쇼핑을 하고 인터넷으로 모든 것들을 처리합니다. 교회에서도 인터넷으로 예배와 설교를 준비합니다. 이렇게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풍조에 익숙지 못하면 후퇴하고 낙오되고 새로운 세대의 사람들과 갈등이 생깁니다.

그런데 건전하게 변하면 좋은데, 안 좋은 쪽으로 바뀌는 것들이 우리를 안타깝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달으시고 잘 대처하여 하나님의 자녀들로 살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는데,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도 변하고, 개인도 변하고, 나라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고 발전해 갑니다. 그것이 시대적인 요청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라고 합니다.

겨울이 지나면 새봄을 맞이합니다. 그때 두꺼운 옷을 벗고 새봄의 이름다운 옷으로 갈아입어야합니다. 그것을 거부한다면 여전히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 한국교회를 비롯해서 성도들의 신앙이 깊어지고 넓어져야할 때입니다. 기독교가 이 세상을 구원하고 이 세상을 리드해 왔는데, 요즘에는 사회적인 불신이나 지탄의 대상이 되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훌륭한 믿음의 모습과 열린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시대에도 예수님을 배우는 교회여야 합니다. 그래야 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책임지고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세계적으로 선교역사상 가장 성공한 사례라고 합니다.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지 130년 만에 국민의 20%이상이 복음화 되었습니다.

수많은 전도자들의 헌신과 전도의 결과는 한국교회와 국가적으로도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신 있는 것이 있다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 교회가 7만8천교회입니다. 선교사가 2만5천여 명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한국교회는 장점이 있는가 하면, 약점도 있고 과제들도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배타적인 것입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농경문화를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배타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민족이 인종차별을 많이 합니다. 서구에 대해서는 호의적인데 약소국가에 대해서는 너무나 편향적입니다.

어느 대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한국국적과 미국국적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때, 하나만 선택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244명 중 44.8%인 110명이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응답을 했습니다.

오늘 젊은이들 생각이 이렇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들은 또 지극히 이중적입니다. 그들이 광화문 촛불시위 때는 반미를 외쳤습니다. 속으로는 이렇게 선호하고 겉으로는 이렇게 이중적입니다. 이것이 이 땅의 젊은이들의 마음이고 생각입니다.

또 만삭의 여인들은 미국국적을 얻겠다고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미국 국적을 취득하면 무슨 벼슬이나 한 것처럼 아이를 안고 당당하게 돌아옵니다. 우리민족이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태도입니다. 얼마나 이율배반적입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에게는 거룩하게 구별 되었다는 정결의식이 지나치다 보니까 세리나 죄인들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또 이방인에 대한 편견도 극심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복음의 대상이 아니라 경계의 대상이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이 상황을 본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은 못마땅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막]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도 세리와 같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지금 각박한 세상에서 얼마나 시달리고 ?기면서 살았겠습니까? 그리고 세리와 같이 죄인인줄 알면서 죄악 중에서 어쩔 수 없어 괴로워하며 살 때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이 시대에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회 구조적으로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시스템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사랑받기 원하지만 사랑 받고 위로 받을 곳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사랑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상처 받고 실의에 빠진 이웃들이 너무나 많아요. 그래서 주님의 사랑과 위로가 필요한 시대인 것입니다.

새로운 세대, 새로운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상처 받고 죄의식 속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야 말로 꼭 의원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의원이 되시고 위로자가 되시고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꼭 필요합니다.

새로운 세대, 새로운 세상은 예수님 사랑으로 세상을 품어야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봐야합니다. 이 시대는 그리스도의 자비와 구원하심을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예수님의 사랑과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오픈 되고 생각이나 관계나 처신이나 삶이 활짝 열려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상처 받은 한국사회를 치유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과 부적응자 들에게도 우리들이 위로하고 보살펴야합니다. 그런 교회와 그런 성도들이 되도록 합시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상당히 배타적이고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야만인이나 짐승 대하듯 했습니다. 또 사마리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도 밟지 않을 만큼 비하하고 차별하는 배타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어부들과 서민들 가운데서 제자를 택하시고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또 사람들이 무시하고 경멸하는 세리를 불러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또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감싸시며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편견 없이 누구나 품으시고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제자로 부르시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활짝 열린 마음을 가지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세대, 새로운 세상을 품으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진정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고, 삶이고, 생각이고,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우리들이 이 새로운 세대, 새로운 세상을 넓은 가슴으로 안을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우리 반석교회가 새로운 이 세상과 세대들을 다 이해하고 수용하는 큰 그릇이 되도록 합시다.

우리들이 그리고 우리 반석교회가 새로운 세대, 새로운 세상을 책임질 것입니다. 누구라도 어떤 상황이라도 가슴에 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함께 갈 것입니다.

< 2015.3.15반석소식32호, 2015.2.22주일밤 >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주님의 고난에 대한 우리의 헌신 오금표 2015.04.03 0 453
다음글 결혼식과 장례식의 회상 오금표 2015.01.17 0 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