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 행하도록 가르치라 | 오금표 | 2016-07-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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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 행하도록 가르치라(신명기4:1-8)
30-50년 전의 우리나라는 겨울이면 교회마다 크리스마스 행사가 있었고 또 부흥회가 열려서 믿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참석하곤 했습니다. 여름이면 여름성경학교와 여름수련회가 열려서 동네의 어린이들이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와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하여 기도해야합니다. 우리는 교회가 매우 어려운 시대를 지나고 있으며 특히 교회학교 부흥하기가 힘든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은 출산율이 감소한 탓도 있습니다. 그리고 입시위주의 교육에 신앙이나 인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사회문화적인 반감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들이 시대와 사회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와 가정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우리나라와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선도해 갈 수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대한민국을 선도해 가는 기독교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이 있어야합니다. 다음의 내용은 지난 주일날(2016.7.17.) 주일 낮 예배 설교원문입니다. 초대교회로부터 교회에 주어진 교회의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은 교회를 교회답게 하고,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을 분명하게 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것은 첫째가 ‘케리그마’ 말씀선포입니다. 그리고 ‘디다케’ 교육, 즉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디아코니아’라는 봉사입니다. 그리고 ‘코이노니아’ 친교입니다. 또 하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예배’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이 다섯 가지 측면을 잘 조화시키고, 그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명백히 추구해야 할 것은 모두를 잘하는 균형입니다. 오늘은 본문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교육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교육은 결과가 금방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지켜 행하도록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했듯이 오랜 시간 가르치고 또 가르치면 좋은날이 옵니다. 우리 자녀들과 다음세대를 잘 가르치기를 축원합니다. 보행속도, 걸음걸이에 대한 통계를 봤습니다. 미국의 뉴욕거리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걸음속도를 재었습니다. 30초에 스물두(22)발자국을 걷습니다. 아주 느긋하게 점잖게 걷는 속도입니다. 일본의 동경에서 조사했습니다. 그것보다 조금 빠릅니다. 스물일곱(27) 발자국입니다. 이번에는 한국의 명동거리에서 조사했습니다. 자그마치 서른여덟(38)발자국으로 통계가 나왔습니다. 굉장히 빠른 걸음입니다. 한국은 세계 제일로 급한 나라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빨리 해 치우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복권도 즉석복권을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어떻게 일주일을 기다립니까? 이제는 일주일을 기다리는 여유마저도 잃어버렸습니다. 즉석에서 당첨을 확인하는 민족입니다. 식사도 빨리하시는 분은 5분이면 됩니다. 따뜻한 커피한잔도 물을 끓이는 시간을 참지 못해서 자판기에서 뽑아 먹습니다. 그것도 컵나오는데다 손을 넣고 기다립니다. 예배 후에 기도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웅성웅성 나가기 때문에 쑥스러워서 혼자 있기가 곤란합니다. 어떤 사람은 축도하기도 전에 나갑니다. 이렇게 빠르다는 것, 급한 것이 좋을 때가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이 따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감각을 잃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은 결코 급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이란 짧은 순간에 승부를 거는 것이 아닙니다. 가꾸고 가꾸어서 미래에 그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교육은 미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지금 투자해서 자식이나 손자 대에 그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30년,40년 후를 위해서 투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교회는 미래를 바라보며 즐거움으로, 지켜 행하도록 잘 가르쳐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미래를 가르쳐야합니다. 미래를 가꾸는 교회, 미래를 바라보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지켜 행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한국교회가 어렵습니다. 전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세상학문이 인간의 영적인 감각을 무디게 합니다. 한국교회는 교회학교가 가장 어렵습니다. 장년들은 그래도 되는데 왜 교회학교가 어렵습니까? 분명히 가정마다 자녀들이 둘, 셋 있는데, 성도들의 가정에서 조차도 교회로 보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학생들이 교회 가는 것을 부모들이 학원가고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담임목사인 저도 시간을 조절하고 합리적인 시간관리를 원합니다. 부모들에게 자식은 소중합니다. 그러니까 지켜 행하도록 바르게 가르치자는 것입니다. 어떤 초등학생이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한석봉의 어머니는 불을 끄고도 떡을 썰었는데 아빠는 불을 끄고도 글을 쓸 수 있어요? 그럼! 아들이 불을 끄더니 여기에다 아빠의 이름을 쓰세요. 그냥 싸인하면 되요. 이게 뭔데, 제 성적표예요. 누구나 자식은 소중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없는 세상학문과 지식이 인격과 신앙을 망하게 합니다.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마귀의 전략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예수님을 소유하지 못하고 겉 넘은 기독교인들의 학문과 지식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들이 무신론도 만들고 공산주의도 만들었습니다. 세상의 학문과 지식은 꼭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예수 그리스도가 더 중요합니다. 학교 교육도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사람으로 만드는 교회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엄밀히 말해서 넓은 의미의 기독교 교육은 교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나 사회와 가정을 통해서 기독교 교육이 통합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바람직한 기독교 교육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정과 우리교회가 해야 합니다. 민족의 미래나 가족의 미래를 누구에게 맡기겠습니까? 교회는 처음부터 디다케, 교육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유산을 계속해서 다음세대에 전달하도록, 지켜 행하도록 가르치는 사명이 나에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전달한 신앙은 초대교회를 통해서 고백되고 가르치고 증언되어 왔습니다. 핍박으로 흩어진 그리스인들은 그곳에서도 신앙을 가르치고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했습니다. 교회는 신앙을 전수할 뿐 아니라 교육하고 경험하는 신앙의 현장입니다. 교회에서의 관계를 통해서도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교회의 분위기 자체가 교육입니다. 저는 교회학교가 부흥되기를 - 그런데 헌신적인 교사가 부족합니다. 여러분 중에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어린이 교육에 달란트가 있는 분들은 자원하시기 바랍니다. 행여나 마음은 있는데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교사들을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교회교육은 됩니다. 그 후에 기술과 재능은 하나님께서 다 채워주실 것입니다. 교육을 위하여 우리교회가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는 신앙교육이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장소입니다. 신앙교육의 책임은 맡겨진 교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에 있습니다. 교회는 교육하는 곳입니다. 이제 말씀을 본문으로 돌아가서 마치려고 합니다. 본문의 신명기는 광야생활을 하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선포한 말씀입니다. 모세는 젊은이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단단하게 교육합니다. 1절입니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사는 길과 복된 길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앞서 인생을 살았던 선조로서 다음세대에게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진리이기 때문에 부모의 마음으로 선언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명령이라고 합니다. 2절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반드시 지켜야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고 배운 사람들은, 사망가운데서도 살고 승리한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오직 하나님 여호와께만 붙어 떠나지 않아야 믿음을 지킵니다. 우리 자녀들은 소중합니다. 우리 다음세대는 우리에게 맡겨주신 유산입니다. 잘 가르칩시다. 예수님을 떠나지 않도록 도와줍시다. 그리고 좋은 신앙의 전통을 이어갑시다. 5절입니다.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만약에 자녀들이 순종하여 행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절망적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가정과 교회에서 지켜 행하도록 가르치는 일이 가장 소중합니다. 본문 6절입니다.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기독교교육 없이 온전한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성경의 진리가 무시되고 건강한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무시되고 구원 받을 가정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지켜 행하도록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지켜 행하도록 가르치는’ 우리교회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7-8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지켜 행하도록 가르치기 위하여 말씀드립니다. 여름 성경학교와 수련회를 앞두고 꼭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1. 가정에서 모범적인 신앙의 가정이 됩시다. 자녀들이 부모의 삶을 보고 즐겁게 신앙을 배우도록 먼저 모범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 신앙을 물려주기 위해서 때로는 가정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를 가르칩시다. 2. 교회학교 교사로 자원하시기 바랍니다. 교회학교 교사는 선생님이기 보다는 영적인 아비의 마음으로 섬기며 헌신하며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교회는 헌신적인 교사가 부족합니다. 그리고 헌신적인 노력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3. 우리집 아이들을 교회학교로 인도합시다. 자연스럽게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 적응하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어른들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시간관리와 자기관리를 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4. 신앙의 명문가문이 되도록 다짐합시다. 본문에서 모세가 유대인에게 선포한 말씀과 같이 우리들도 기회가 되는대로 부지런히 가르칩시다. 그리고 신앙의 명문가문으로서 구별하고 교육하여 신앙인의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5. 헌신하고 충성하는 일꾼을 키워냅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다음세대에게 지켜 행하도록 하지 않으면, 가정이나 교회를 물려줄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와 가정에서 위대한 인물들이 나오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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