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 홈 >
  • 알림&나눔 >
  • 담임목사 칼럼
담임목사 칼럼
중요한 결정의 기준 오금표 2021-05-12
  • 추천 0
  • 댓글 0
  • 조회 541

http://bansuk2010.onmam.com/bbs/bbsView/114/5913460

중요한 결정(결정할 때의 기준). 사무엘상25:9-17

오늘 수요일 저녁예배 설교 원문입니다. 원고를 원하시는 분이 계시어 여기에 올립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울은 기세등등하고 다윗은 쫓기고 있는데 사무엘이 죽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본문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마온에 심히 부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인 나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아비가일인데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웠으나 나발은 완고하고 행실이 악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나발이 양 털을 깎을 때 사람을 보내며 예의를 갖추어 목자들의 안전을 보호 했으니, 소년들에게 양식을 구했습니다.

그때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기를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을-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자에게 주겠느냐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칼을 차라. 하고 사백 명을 데리고 올라갑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급히 떡과 포도주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오는 길목에서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이때 다윗은 감정대로 했다면 큰 실수를 할 뻔했습니다. 그러나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엎드렸습니다.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그리고 하는 말이 내 남편은 나발미련한 자입니다. 자비를 구합니다.

그런데 은혜로운 말을 합니다. 25:26.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도 살아 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다윗이 감동을 합니다. 25:32,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다윗이 실수할 뻔 했는데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중요한 결정을 하도록 도왔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들을 결정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일들을 잘못 결정하면 위험하기도 하고 큰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물론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결정은 기도하면서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결정이 내 의도와는 다르게 결정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간순간 하나님의 뜻을 묻고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의 다윗이나 아비가일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사사로운 것들이 걸려서 마음을 조릴 때도 있습니다. 인간적인 욕심에 사로잡힐 때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금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십계명입니다. 거기는 주님이 금하시는 것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하라는 말씀과, 하지 말라는 말씀이 분명합니다. 율법으로 기준이 됩니다.

거짓말, 속임수 ,도적질, 살인, 간음, 탐욕을 누가 권하거나 내가 그것을 권하는 것은 안 됩니다. 반대로 예배드리는 일, 기도하는 것,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무조건 받아 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볼 때 확실히 옳거나 확실히 잘못된 일이 아닌 경우는 어떻할까요?

분명히 옳은 것도 아니고, 분명히 잘못된 것도 아닐 때 우리가 결정해야합니다. 이런 결정들이 우리를 괴롭히는 난해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결정이면서도 사실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음식을 가려야 한다는 구약의 규정을 지켜야 합니까? 돼지고기는 구약율법이 금하는 음식입니다. 흡연에 대하여 성경은 금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까? 기독교인에게 술은 어떻습니까? 옷차림은요. 그것이 중요한 결정입니까? 이런 문제들이 나를 괴롭힙니까?

그래서 어떤 것들을 결정할 때 나름대로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결정이라고 제목을 정했지만, ‘결정하는 기준을 말씀드립니다.

 

1.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 영적으로 유익한가? 입니다.

고린도전서 612절에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불법을 제외한 모든 것이 가합니다. 그러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유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나에게 영적으로 유익한가?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 나의 영혼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인가?’ 이것은 온당한 질문입니다. 영적으로 좋은 일이라면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익하거나 거슬리면 금합니다.

고전9:24-25,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이라 하시면서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고후12:19,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모든 결정의 기준은 영적인 유익에 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 지장을 주는 일은 무엇이든 거부할 것입니다. 나의 영적인 생활에 방해가 된다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거부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선택기준은 영적으로 유익한가입니다.

 

2.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 하나님께 영광인가? 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어떤 일을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결정할 때 그 기준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고전10:31절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대원칙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가? 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을 높이는가?

내가 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거룩하게 하는가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나의 결정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가? 아니면 영광을 가리는가? 이것이 내가 결정하는 기준입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기준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기자랑으로 일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고, 내가 들어나거나 내 이름이 높여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결정하더라도 그 기준이 하나님의 영광이며 찬양하는 것이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 하나님이 하시는가? 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모든 것이 선하게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순탄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물론 십자가의 길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유익하고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인가를 선택합니다.

시편8:4-8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하는 일들은 너무나 사소한 것들 앞에서 무너집니다. 술 때문에 실수합니다. 욕심 때문에 걸리기도 합니다.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때문에 넘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모든 일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떤 것을 결정할 때 기도하세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인가? 아니면 내 욕심인가 내 고집인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앞길을 인도하시고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 죄악이나 거짓이면 버립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분명히 죄악인데 거짓인데 내게 유익하면 교묘히 가리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마음이 끌리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2:16절에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라고 합니다. 우리는 죄악이나 거짓을 쉽게 용납합니다.

그러나 자유라는 구실로, 정욕이나 악한 욕구를 가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악학 의도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친목을 위해서 도박합니다. 양심을 거스르면서 교묘하게 속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나 거짓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나 양심에 거슬린다면, 하지 마십시오.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이유도 예수님께서 경고하시는데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유다를 향한 최종적인 사랑의 호소에도, 거절하고 마음이 완악해졌습니다.

여러분이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 혹시 죄악이라면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거짓이라면 마귀의 유혹일 뿐입니다. 후에는 그것이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진리를 택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깨어서 언제나 바르게 살고자 하지만, 모든 것이 나의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본문의 다윗이나 아비가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역사하심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순종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다윗의 소년들이 나발에게 양식을 구하매, 나발이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이런 악한 말을 할 때 다윗이 그들을 진멸하려는 잘못된 결정을 합니다. 그러나 나발의 아내가 현명하게 그들을 영접했던 것입니다.

아비가일의 중요한 결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다윗의 수용은 하나님의 감동이었습니다. 순간의 실수로 모두에게 큰 화가 임할 뻔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현명하게 판단하고 잘 결정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중요한 일이나 사사로운 것이나 늘 결정하며 삽니다. 그러면 어떤 기준으로 결정을 해야 하겠습니까?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 영적으로 유익한가? 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인가? 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가? 입니다. 죄악이나 거짓이면 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반석교회는 엘리사벳이 있습니다. 오금표 2021.06.11 0 511
다음글 코로나를 하나님의 은혜로 오금표 2021.01.11 0 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