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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솔라 -오직성경1,2-
안성진 2017-02-19 추천 0 댓글 0 조회 183

다섯 솔라 오직 성경 (1)

과거의 영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때로는 과거의 영광에 매여 있어 현실을 모른다는 부정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예전의 좋았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는 말입니다. 2017년은 크리스천들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과거의 영광을 생각나게 하는 해입니다. 바로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성교회 정문에 붙인 ’95개조 논제(반박문)’이 도화선이 된 종교개혁이 500주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이 영광스러운 과거인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그들이 주장했던 혹은 그들의 주장에 내재되어 있던 다섯 솔라(Five Solas)’라 불리는 근본정신 때문입니다. 이는 그들이 만들어낸 개념이 아니라 성경에 명시된 혹은 내재된 분명하고 핵심적인 개념인데, 당시 잊혀졌거나 왜곡되었거나 의미가 퇴색된 것들을 바로 잡기 위해 강조한 것입니다. 다섯 솔라는 아래와 같습니다.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Sola Gratia 오직 은혜

Sola Fide 오직 믿음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종교개혁 500주년인 2017년을 시작하면서 종교 개혁의 근본정신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보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 정신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하는 우리의 믿음과 삶에 있어 성경이 유일한 최종 권위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유일한 최종 권위입니다. ‘최종 권위는 우리가 어떤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 최종 결정권이 누구 혹은 무엇에 있느냐를 의미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바로 그 최종 권위이자 유일무이한 권위라는 것이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이었습니다.

 

당시의 교회가 성경의 권위를 완전히 부인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나오고 개혁이 필요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성경과 동등한다른 권위도 인정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교도권(magisterium)이라고 하는, 교황과 의회가 결정한 교회의 전통(가르침)이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실제적으로는 성경의 권위가 다른 보이는 권위아래 놓여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즉 성경의 권위를 겉으로 부인하지는 않지만 실제적으로는 부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은 교회의 전통 등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들도 성경의 권위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사실 교회의 전통도 오랜 기간 성령의 조명 아래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경에 대해 치열하게 연구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불완전한 인간이 그러한 전통을 이어가면서 본질은 퇴색되고 변질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전통 자체도 때로는 다시 성경으로 검증받고 재정립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통 자체가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갖는다고 말한다면 이런 일이 불가능합니다. 교회의 믿음과 삶에서 최종 권위는 성경이고, ‘오직 성경입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자들의 핵심 사상이고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진리의 기초입니다.

 

오직 성경은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자신을 종교개혁의 후손들이라고 하는 우리는 오직 성경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우리는 여러 면에서 이 정신과 멀어지고 당시 개혁이 필요했던 교회의 모습과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첫째로 성경 자체와 멀어졌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경을 라틴어로만 읽게 했는데, 문제는 당시 라틴어는 이미 일반이 사용하지 않는 언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틴어를 배운 자들이 아닌 일반 성도들은 성경을 그림으로 보거나 사제들이 설명해주는 것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성경을 라틴어가 아닌 당시의 일반 언어로 번역하는 일들이 종교 개혁을 전후로 일어나게 됩니다. 왈데시안(왈도파)은 이미 12세기에 신약 라틴 성경을 불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습니다. 14세기에는 잘 알려진 위클리프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였습니다. 마르틴 루터도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들은 로마 가톨릭의 위협 아래서도 이런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정말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설명이나 해석을 맹목적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베뢰아 사람들처럼 성경이 정말 그런지 스스로 읽고 묵상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이 일은 교회의 인도자들이나 성경 학자들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그렇게 해야 하는 일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성도가 이 부분을 놓치고 있습니다. 과거의 성도들보다 우리는 성경에 훨씬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보다 우리 삶에 더 가까이 또 깊이 들어와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언제나 내 손이 닿을 곳에 있는 스마트폰이 그렇습니다. TV가 그렇습니다. 그런 매체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수많은 정보들이 그렇습니다. 성경 한 권을 손에 들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치렀던 과거 성도들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좋은 환경에 있지만, 성경은 여전히 우리에게서 멀리 있습니다.

 

항상 성경을 손에 들고 있고 읽고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갖고 내 시간과 노력을 사용하는 만큼 성경을 읽고 배우는 일에 관심이 없다면 성경에서 내가 멀어져가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무언가 나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 다른 무언가는 내 삶의 중심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성경이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맘에 드는 저자들의 책을 읽는 것으로 성경 읽는 것을 완전히 대체하기도 합니다. 물론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일이고 권장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대한 책이 성경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와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말하면서 누가 그러는데 걔는 이렇다더라고 말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저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알고 있는 사람을 마치 자신이 아는 사람처럼 말한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의 말을 신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 내가 아는 것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내가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먼저 성경을 가까이하고 읽고 배워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둘째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전통을 먼저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전통이라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자체가 권위가 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왜 그런 전통을 가지고 있는지 성경으로 분별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오직 성경을 믿는 자들에게 있어 정상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성경에 근거한 분별이나 판단이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성경에 대한 과거의 해석이 지금에 와서는 성경과 같은 권위가 된 것입니다. 무엇이 성경이고 무엇이 전통인지도 구별하지 못하여 성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왜 토를 다느냐는 식의 말을 쉽게 합니다. 비슷하게, 목사님의 말이 때로는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갖기도 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달하는 한에서 권위가 있습니다. 교회의 전통도 말씀의 의미를 잘 반영하는 한에서 권위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렇게 해”, “우리 목사님은 이렇게 가르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 됩니다.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이지 다른 무엇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왜 우리 교회는 이렇게 하고 우리 목사님은 이렇게 가르치는지 성경으로 분별하고 성경으로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건전하고 올바른 성경해석에 근거하여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고칠 수 있는 겸손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성경이 우리에게 충분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를 통해서 좀 더 자세하게 나누기를 원합니다.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여 성경 읽기를 계획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혹은 반복된 실패로 인해서 계획을 세우는 것조차 조금은 두려운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성경을 펴 보십시오. 그 성경이 여러분의 손에 들어오기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귀한 말씀을 당신이 이해할 수 있게 당신 가까이 두셨습니다. 그 말씀을 당신은 어떻게 대하고 계십니까?

 

다섯 솔라 오직 성경 (2)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인 다섯 솔라(Five Solas)’ 중 가장 기초가 되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 대해서 지난 시간에 이어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성경을 강조했던 것은 그 당시의 교회가 성경 외의 다른 권위를 인정하면서 사실상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렸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우리도 비슷한 잘못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말하는 것은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실제 우리의 모습은 개혁이 필요했던 그 당시의 모습과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첫째, 많은 성도가 성경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시대보다 성경은 가까운 곳에 있지만, 성도들의 마음에서는 멀어져 있습니다. 한구석에서 먼지가 쌓여가는 성경책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들의 마음에서도 중심이 아닌 어느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음에 대한 상징적인 모습이 되었습니다.

 

둘째, 성경보다 전통을 우선시합니다. 전통은 어느새 성경의 완벽한 적용으로 인식되어 검증할 필요도 없고 검증해서도 안 되는 영역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성경과 같은 위치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셋째, 성경이 우리에게 충분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세 번째 순위로 언급하는 것이지만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크고 보편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먼저 성경이 충분하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이 충분하다는 것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해답이 성경에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 차가 작동을 멈추면 매뉴얼을 보거나 자동차 전문가를 찾아가지 말고 성경책을 펴거나 교회 목회자를 찾아가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충분하다는 것은 영적인 의미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은 성경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하고 충분한 계시가 바로 성경입니다.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유일하고 충분한 해답이 성경에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가르침이 성경에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경이 충분하다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말씀의 충분성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19:7-9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살아납니다(벧전 1:23).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는 자들도 변화됩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대한 구체적이고 분명한 증언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참된 지혜를 주고 기쁨을 줍니다. 밝게 보고 바른길을 갈 수 있게 합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성경입니다.

 

비슷하게, 사도 바울은 성경의 역할과 목적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딤후 3:16-17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우리에게 무엇이 옳은지 교훈하고 잘못할 때 책망하며 그것을 바로잡습니다. 그리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교육(훈련)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모든선한 일을 할 수 있게 준비시킵니다. ‘선한 일은 우리 기준에서의 착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말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로서 우리가 창조 받은 목적이며 존재 이유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선한 일을 하는 데는 성경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따라서 성경으로 충분합니다.

 

이런 성경의 충분성은 오늘날 두 가지 측면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외면 받는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첫번째는, 성경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말 그대로 성경의 충분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입으로 성경의 충분성을 부인하지는 않더라도, 복음 전도의 방법을 복음의 내용보다 더 강조하고 있는 풍토는 이런 문제를 단편적으로 드러내는 예입니다. 감동적인 음악이 있고 뜨거운 부르짖음이 있어야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성경 어디에서도 말하고 있지 않지만, 많은 교회가 그런 방법에 몰두하면서 정작 중요한 성경 자체의 메시지는 소홀히 합니다. 때로는 방법에 잘 맞지 않아서 메시지를 축소하거나 제외하기도 합니다. 죄와 심판에 대한 말씀은 아주 간단히 언급만 하거나 아예 말을 꺼내지도 않습니다. 은혜와 사랑, 위로의 메시지만을 복음이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을 구원하기에 충분하다고 믿는다면 이런 타협은 불필요합니다. 올바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좋은 방법에 대한 고민은 필요한 부분이지만, 결국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능력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은 자들로서 우리가 가진 최우선의 역할은 복음 자체를 올바르게 전하는 것입니다.

 

사실 좀 더 만연한 문제는 오늘날의 심리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TV나 다른 매체에 등장하는 심리학의 전문가들은 그들의 이론이 과학인 듯이 말하고 사람들은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 깊숙이 침투한 심리학은 자연스럽게 교회 안으로도 흘러들어와 하나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 영역에서조차 심리학적인 해석과 해결책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성경은 인간이 가진 모든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을 지목합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있고 해결책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장 핵심이 되는 메시지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심리학은 문제의 원인으로 사람을 지목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속해 있던 환경, 과거의 경험을 지목합니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낮은 자존감이 문제라고 합니다.

 

어떤 관찰이나 실험의 결과는 객관적인 자료로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문제는 그것들에 대한 분석과 해석입니다. 그들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전제에 기초하여 보이는 것을 해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과연 성경은 인간의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어서 이런 심리학적인 해결책이 필요할까요? 성경은 인간 관계의 문제에 있어 부족한가요? 자녀 양육에 있어서도 부족하고 부부 관계에 있어서도 부족한가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게 하는데 성경은 충분하지 않은가요?

 

충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성경은 우리 삶에 있어 충분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 외의 다른 권위가 아니라, 성경이 (앞서 언급한 여러 분야를 포함하여) 우리 삶의 여러 부분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더 잘 알고 그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경이 충분하지만 결국 내 실제의 삶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문제입니다. 첫 번째 언급한 문제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성경이 영적인 부분에 있어 충분하다는 말을 매우 제한적으로 혹은 독립적으로 이해하는 문제입니다. 성경은 내가 나중에 죽어서 좋은 곳에 갈 수 있게 해주고 지금 힘들고 지칠 때 위로를 줄 수 있지만, 대부분 보통 나의 삶에서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앙과 삶이 별개여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삶에서 어떤 분별을 하고 결정을 할 때 중요한 것은 성경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조언, 사회적인 통념이나 관습, 문화입니다. 단지 결과적으로 효과가 있느냐 효율적이냐는 것도 결정의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앞서 저는 차가 고장 난 것을 예로 들어 성경이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대해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가 고장 난 상황에서 성경은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언제는 육체로만 존재하고 언제는 영혼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차가 고장 난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연히 매뉴얼을 찾아보고 내가 해결할 수 없다면 전문가를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이 짜증 날 수 있고 불평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들을 사람이 없어도 욕을 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괜찮을까요? 상황이 그러니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말하고 선한 말을 하라고 명합니다. 차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는 성경이 말하지 않지만, 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우리가 돈을 사랑해서는 안 되고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성경은 침묵하지만 어떤 가정을 이루어야 하고 어떤 남편 혹은 아내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분명히 말합니다. 어떤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좋다는 말은 없지만 어떤 직장인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합니다. 성경이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대해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모든 삶의 부분에 있어 어떤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해답은 줍니다. 성경은 우리 실제 삶과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냥 예배당에 두고 다녀도 괜찮은 그런 책이 아닙니다. 언제나 내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오직 성경정신은 종교 개혁의 핵심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자주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 말이 그저 형식적인 슬로건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과거의 잘못을 잘 알면서 반복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유일한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성경의 권위와 충분성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습니다(4:12). 우리 삶에서 더욱 그러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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