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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천개의 섬나라 필리핀 세부에서 오금표 2017-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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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천개의 섬나라 필리핀 세부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았고 지리적으로 가까이에 있는 필리핀은 지진과 화산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으로 7,107개의 섬으로 구성된 나라입니다. 크게 북부의 루손섬과 중부의 비사야 제도와 남부의 민다나오섬으로 나누어집니다.

   현재의 인구는 1억 명에 육박하는 세계에서 12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로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데 역사가 짧은 나라입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지만 작은 섬들로 구성되고 섬들의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강력한 해상왕국이나 문화를 이루지 못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1521년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한 이후부터 세계무대에서 필리핀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이때는 유럽에서 지동설이 나오고 신대륙을 발견하고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식민지를 개척하던 시대였습니다.

   결국 필리핀은 스페인에게 330년의 식민지배기간은 천주교회를 받아들이고 스페인계와의 혼혈과 다양한 인종의 국가가 형성되고, 미국에게 48년의 식민지배기간은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사는 나라였고, 또 일본에게 3년간의 신민지배에서 벗어나면서 오늘날의 필리핀이 되었습니다.

   필리핀에도 독립운동이 있었고 민족적 영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이 독립이나 민족의식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섬마다 민족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수도 마닐라가 있는 루손은 말레이계의 사람이고, 민다나오는 인도네시아계 사람인데다 이슬람신도들이 많아서 지금도 위험지역입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이나 애국애족정신과는 다르지만, 필리핀에서도 미미하지만 1521년에 포르투갈의 마젤란이 세부의 작은 섬 막탄에서 라푸라푸에개 살해되고 본격적인 유럽세계에 알려지게 되어 식민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패한 스페인은 파리강화조약에 따라 미국의 식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저항하여 전쟁을 치루고 미국은 비교적 자율적인 식민정책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의 점령하에서 1943년에 필리핀 독립을 승인했고 대통령에는 호세 파키아노 라우렐이 선출되었습니다. 그 뒤로 전쟁이 끝난 1946년에 미국은 필리핀의 완전 독립을 승인했습니다. 그래서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아시아에서 경제 사정이 좋은 나라였으나,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어 독재와 부패, 과도한 빈부 격차로 경제적으로 몰락했습니다.

   필리핀은 우리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전통적인 우방국가입니다. 특히 우리가 6.25를 격을 때 유엔군으로 참전했고 쌀과 차관으로 지원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장충체육관을 건축해 줬고, 쌀의 품종을 개량하여 통일벼를 보급하여 한국인이 배고품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 나라입니다. 지금까지도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로서 서로가 비슷한 점들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안타깝게도 너무 다릅니다.

   정치적인 격변을 몇 번이나 격은 필리핀은 지금 새로운 대통령 두테르테가 선출되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격변기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필리핀에서는 마약과 테러가 일상적이고 총기를 소지할 수 있고 심지어는 청부살인까지 빈번합니다. 무능력하고 청렴하지 못한 공무원이나 경찰력은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두테르테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범죄자들이 저항하면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사살하라. 이것이 나의 명령이다무서운 경고를 하고 금연령까지 내렸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일찍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삼청교육대를 보내던 시절에 범죄율이 줄어들었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본보기를 따르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필리핀에서는 한국 돈 300만원이면 청부살인이 가능하고 심지어는 50만원만 줘도 가능할 정도로 치안이 허술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권총을 구입할 때는 경찰관에게 돈을 주면 된답니다. 그래서 관광지뿐만 아니라 은행이나 병원 약국 상점에는 높은 담장과 철창에 사설경비업체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능력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험심이 있어 언제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삶에 여유를 가지지 못하다가 2017년 휴가기간에 모법인의 이사연수로 35일간 필리핀의 세부에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업을 하면서 여행으로 학업으로 다녀온 나라가 필리핀인데 나는 처음으로 다녀왔습니다.

   필리핀의 섬 중에서 사람이 사는 섬은 880개뿐이며 이름이 붙여진 섬이 2,700개뿐이라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비사야제도에 메트로 세부를 중심으로 유명 관광지와 휴양지가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과 언어 그리고 문화와 역사가 있는데 세부는 마젤란이 처음으로 도착한 역사적인 곳입니다. 이곳에는 마닐라와 함께 국제공항이 있고 특급리조트들이 즐비한데 나는 샹그릴라 리조트에서 있었습니다.

   필리핀은 교육열이 높아서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가르치는 나라입니다. 아시아 최초의 대학교인 산토토마스대학교 등의 명성 있는 대학이 있고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유학을 가거나 신학박사학위를 받으러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보니 가난한 집에서는 교육은커녕 리조트에서 잡부로 일하거나 어린이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지가이드가 보는 대로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합니다.

   스페인의 영향으로 가톨릭이 약83%이며, 필리핀 성공회와 개신교가 약9%라고 합니다. 필리핀 성공회는 미국 성공회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전래되었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전래되지 않은 산간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개신교의 경우는 미국의 영향과 지금까지도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묵은 샹그릴라 막탄리조트 앤스파(SHANGRI LA MACTAN RESORT AND SPA)는 세부에 위치하고 있는 5성급 리조트로 세계적인 호텔 샹그릴라 호텔의 체인입니다. 리조트 앞 해변에는 마음껏 수영할 수 있는데 열대어들이 같이 놀아주는 최상급의 환경입니다. 다양한 휴양시설을 포함해 광활한 규모의 대지에 지상낙원이 따로 없습니다. 식당에는 세상에 없는 음식이 없고 쾌적한 객실과 다양한 레스토랑, 수영장, 상량하게 인사하는 직원들이며 그야말로 샹그릴라이고 유토피아입니다.

   그런데 삼엄한 경비구역을 벗어난 리조트 밖에 세상은 다릅니다. 호객꾼에다 구걸하는 사람이며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환경입니다.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보기 위하여 현지시장에 갔는데,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지만 그곳에서 거래되는 물건이나 시장규모는 그 흔한 과일도 온전히 살 수 없어 반 토막을 사고 팔며 생선도 작은 것 몇 마리에 불과하고 공산품은 모두가 외국산인데 가난 그 자체였습니다.

   세부지역에서 가장 아름답고 관리와 보존 상태가 뛰어난 해변을 자랑하며 경관이 수려한 리조트에서 내가 묵고 있다는 것이 그들 원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역시 나는 목회자입니다. 자꾸만 그들이 걸립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빈부의 차이가 많아서 어쩔 수 없거니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아침 식사 후 빵 몇 조각을 가지고 해변으로 가면 크기 30cm 이상의 물고기에게 먹이로 주는데, 그들은 먹지도 못하고 이곳에서 근무한다는 자부심만으로 만족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첫날을 리조트에서 보내고, 둘째 날은 아일랜드 호핑투어를 했습니다. 필리핀 전통 목선 '방카'를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 아름다운 까오비안 섬 주변에서 스노쿨링을 하면서 아름다운 산호와 형형색색의 열대 물고기를 보고 바다낚시를 하는데 나는 수술 후라 구경만 했습니다. 그리고 수상식당에서 새우와 꼬치로 된 BBQ와 꽃게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셋째 날은 보홀섬으로 갔습니다. 보홀은 필리핀에서 10번째로 큰 섬으로 원시 자연의 경이로움을 간직했습니다. 초콜릿 모양과 색을 닮았다 하여 초콜릿 힐’, 세계적인 보호종인 손바닥만 한 안경원숭이’, 열대 우림 숲을 배에서 점심식사를 즐기며 로복강 투어를 했습니다. 그리고 넷째 날은 세부에 있는 마젤란 십자가와 성당과 요새를 들려 필리핀의 역사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번 필리핀 세부를 방문하고 두 가지가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하나는 빈부의 격차가 너무 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왕같이 대접받으며 고급 리조트에 있지만 여기 원주민들은 저임금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유층의 경우에는 우리들과 비교될 수 없는 호화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필리핀이 부유한 나라로 잘살다가 왜 이렇게 가난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정치지도자가 정치를 잘 못하고 정책에 실패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운 나라들의 공통점이지만 국민성이 게으르고 부패와 무질서에 무책임성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빈부의 격차를 줄여야하고 근면하고 성실한 민족성을 회복해야합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도 빈부의 격차가 자꾸만 심해집니다. 그리고 근면하고 성실한 국민성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행여나 우리나라가 필리핀처럼 되지는 않을까 심히 염려하며 기도했습니다. 필리핀은 열대과일이며 물고기들과 자연자원이 많아서 게으르더라도 굶어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조금만 잘 못되면 5천만 국민들이 당장 굶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화가 되고 선교사를 보내어 인류국가 대한민국이 되기 위하여 기도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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